창경궁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185
창경궁은 조선조 세종이
고려때 남경(한양)에 세운 이궁터에
상왕인 태종의 거처로 세운 궁궐이다.
세종은 이 궁궐을 수강궁이라 이름지었다.
그 후 성종은 세분의 대비를 위하여 수강궁을 확장 보강하면서
궁의 이름을 창경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레 창경궁과 창덕궁은 한 울안에 있었고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하여 동궐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창경궁은 임진왜란 때 다른 궁궐과 함께 불타 없어젔는데
광해군 때 재건하였다.
조선왕조의 상징인 창경궁은 일제 강점후
왕궁의 존엄성을 말살하려는 일제의 음모로
궁안의 건물을 대부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고 이름도 창경원으로 낮추어 부르게 하였다.
광복후 1983년부터 동물원을 옮기고
본래의 궁궐 모습을 되찾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
창경궁은 다른 궁궐과는 달리 동향으로 궁을 지었다.
그래서 정문도 동향으로 지었다.
명정전은 창경궁의 으뜸 전각으로
임란때 소실된 것을 광해군 때 재건 하였고
조선조 궁궐중에 가장 오래된 정궁이다.
국보 제 226호로 지정되었다.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과거시험, 궁중의 연회등
공식적인 행사를 치렀던 정전이다.
숭문당과 함인당은
임금과 신하들의 학문적 교류가 이루어진 곳이다.
환경전(창경궁의 내전)
왕비의 일상생활 공간
양화당
통명전
남향으로 지어젔으며 왕비의 침전으로 내전의 으뜸 전각이다.
통명전 앞 뜰은 넓어 연회나 의례를 열수 있도록 마당에 엷은 돌을 깔았다.
남향건물로 왕의 공식 집무실인 편전
동향인 명정전과 처마를 맞대고 있는데
서로의 등을 보게한 특이한 배치이다.
이 문정전 앞 뜰에서
조선왕조 최대의 비극인 사도세자의 죽음이 있었다.
왕조의 심장부인 궁궐이
동물원으로 변하고 시민들의 놀이터가 되게하여
역사가 말살당한 치욕의 현장인 창경궁
이 창경궁은 지금 겨울잠에 빠져있다.
(해설: 창경궁 홍보자료에 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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