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찾아서

병인, 신미양요의 격전을 증언하는 초지진의 소나무

시냇물48 2015. 8. 5. 14:00

 

김포군 대명리와 초지대교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초지진은

 성곽의 둘레가 500m도 안 되는 작은 규모의 방어시설이다.

조선 말기, 한양으로 향하는 적군의 침략을 저지하는 군사적 요충지였던 이곳은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 운양호사건(1875년)을 거치며

외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관군의 붉은 피가 물들었던 역사의 아픔이 서려 있다.

당시 격렬한 전투의 흔적은 성곽 입구의 소나무의 포탄 흔적이 되어 아직도 남아 있다.

                                                                                                       (마로니에북스)

 

 

초지진 성벽 밖에 두그루의 오래된 소나무가 서있다.

 

 

좌측으로 보이는 소나무와 전란 때 입은 상처

방부처리가 되어 있다.

 

 

 

 

 

 

우측의 소나무도 전란 때 입은 상처가 보인다.

 

두 양요 때 살았던 사람들은 떠났어도

이 두 그루의 소나무는 제 자리를 지키면서 당시의 참화를 증언하고 있다.

 

 

 

 

 

 

 


1679년 조선 숙종 때에 세워졌던 초지진은 수많은 전투로

완전히 소실되었고 1976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성곽 안으로 위치하는 조선시대의 대포는 조선시대 후기 사용되었던 실물이다.

 당시의 대포로서 가장 대형 규모인 2.5m 길이의 홍이포로

일제 관리 사택의 기둥으로 사용되었던 것을 제자리로 찾아 옮긴 것이다.(마로니에북스)

 

 

 

 

 

 

 

초지진의 성곽 넘어로

김포와 강화를 연결하는 초지대교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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