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찾아서

역사 박물관에서 보는 광복 70년 아픈 역사

시냇물48 2015. 8. 13. 12:00

광복절을 앞두고 대한민국 역사 박물관을 찾아본다.

진정한 광복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광복을 전후로 하는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 할 것이다.

교과서를 통해서 보았던 역사를

물관에 전시된 자료를 통해서 되새겨 보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듯 해서다.

한일 병합에서 부터 6,25 까지의 자료들을 정리하여 본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한국 근현대사와 관련된 자료의 수집·조사·연구를 바탕으로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최초의 국립 근현대사 박물관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에 위치해 있으며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자료 7만 8천여 점(2014년 말 기준)을 소장하고 있다.

 

 

여름 방학 기간이고 광복절을 앞둔 시기라서 인지

부모와 자녀들이 같이 와서 관람하는 가족들이 많이 눈에 뜨인다.

 

 

다른나라의 로고에 비해 대한민국의 로고가 어쩐지 어두워 보인다.

검은 색이 주는 단조로움 때문인 듯 하다.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일본에 넘긴 을사 늑약문

이 때 부터 대한제국은 일본의 통감 지배 체제로 전락한다.

 

 

친일파 각료가 늑약문에 서명을 하였고

고종황제는 이 늑약문이 무효라고 주장하는 내용을

당시의 민족지 대한 매일신보가 보도하고 있다.

 

 

한일 병합조약

경술국치조약, 일제병탄조약이라고도 부른다.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시타케가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1910면 8월 22일 조약을 통과시켰으며

 조약의 공포는 같은 달 8월 29일에 이루어져

대한제국은 일본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공출이란 명복으로 우리 농민들이 피땀흘려 지은 벼를 수탈하여 일본으로 가져 갔다.

 

 

안중근의사의 애국심이 담긴 휘호

 

 

창씨개명의 기록

호적부에 일본식 성씨로 등재된 것을 해방후에 본래의 성씨를 되찾았다.

 

 

일본의 대륙 침략전쟁이 한창이던 때

무기와 탄약을 만들기 위해 놋그릇까지 공출해 갔다.

놋 밥그릇을 빼앗고 공출보국이라고 새겨진 허접한 사기그릇을 나누어 주었다.

학생들은 학교의 공부대신 산에서 소나무 송진을 채취하기도 하였다. 

 

 

일본군에 지원하는 것은 황국신민의 영광이라는 미명하에

갖은 압박과 회유로 학생들을 지원으로 포장하여 전쟁 마당으로 내몰았다.

 

 

일제 강제 통치기간 중에 국내외에서는 항일 독립투쟁이 일어났고

종내는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함으로서 우리나라는 광복이 되었다.

 

 

 

 

 

초등학생들의 등교 모습과 사용하던 책상

 

 

 

 

상해 임정요원들의 귀국

 

 

 김구와 이승만

 

 

 

 

1948,8,15 대한민국 정부수립

 

 

남북으로 갈라저 각각의 정부가 세워젔고

북한과 소련의 남침 전략에 의해1950년 6월 25일 민족 상잔의 뼈아픈 전쟁이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