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찾아서

광복 70년 굴곡진 역사에서도 희망의 꽃은 피었다.

시냇물48 2015. 8. 19. 11:00

역사박물관 탐방기 2편

광복후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갈져서 민족끼리 싸우는 전쟁을 치렀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끌던 자유당 정권은 이승만의 영구 집권을 시도했고

사회는 타락하고 민생은 도탄에 빠젔다.

유례없는 1960년 3,15 부정선거는 온 국민의 항거를 불러 일으키고

4월 민주 혁명으로 제2공화국이 출범하였으나

1년도 못되어 1961년 5,16 으로 군사정부가 들어 섰다.

제3공화국의 박정희 대통령 통치는 지금도 그의 공과에 대한 논란이 많다.

박정의 대통령의 평가는 후대 역사가 들의이지만

조국 근대화와  경제개발의 공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제2공화국 출범에서 오늘에 이르는 전시 자료를 정리해 본다.

 

 

제2공화국 출범

좌:윤보선 대통령

우:장면 총리

4월 혁명후 헌법을 내각 책입제로 바꿨다.

 

 

1961년 5,16으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부는

1963년 선거를 통해 박정희 대통령의 제3공화국을 출범 시킨다.

 

 

제3공화국은 경제개발을 최우선의 정책으로 삼았다.

군용 짚의 엔진에 드럼통을 펴서 만들었다는 시발자동차

 

 

 

 

 

 

통일벼의 출현은 식량증산에 큰 몫을 하였다.

이 때부터 조상대대로 이어 오던 보릿고개도 서서히 그 말이 잊혀저 간다.

 

 

 

 

수출 주요 품목이었던 가발

머리 수집상들이 시골마을 까지 다니면서 머리를 사가는 바람에

시골에서는 낭자 머를 자르고 파마를 하는 미용 열풍이 불었다.

밤거리에서는 머리긴 여자를 골목으로 끌고가서

머리를 잘라가는 강도(?)사건도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월남 파병으로 많은 우리의 아들들이 희생도 되었으나

경제발전에 큰 몫을 하였다.

 

 

서울 시내를 누비던 삼륜 용달차

 

 

금성라디와 텔레비젼

저녁시간 마을의 티비 있는 집에 모여서 연속극도 보고

스포츠 중계도 봤다.

김일의 레슬링 박치기는 당대 최고의 인기 프로였다.

 

 

우리의 기술로 만든 포니자동차와

유조선

 

 

 

 

손으로 찍던 19공 연탄 제조기

 

 

 

 

당시의 형편으로는 불가피 했는지도 모르나

그 후유증이 너무나도 크게 다가오는 산아제한 정책

 

 

 

 

 

 

 

 

 

 

 경제는 발전하고 있었지만

민주주의는 뒷켠을 밀려나는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여준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정부

 

 

 

 

권불 10년이라 했는데.........

 

 

암울했던 제 5공화국의 전두환정권

지울 수만 있다면 깨끗히 지우고 싶은 우리의 역사다.

 

 

 

 

국민의 힘은 위대하다.

 

 

 

 

 

 

 

제2의 박근혜 꿈을 지닌 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