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에 있는 길상사에 지금 꽃무릇이 한창이다.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꽃을 상사화라 하는데
길상사에 마음시린 사랑의 이야기가 서려 있다.
김영한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1916년생인 김영한은 몰락한 양반가문에서 태어나
결혼에 실패하는등 굴곡진 삶을 살다가 조선권번에 들어가 기생이 된다.
김영한은 문학에 대한 소질도 많은 재원이기고 했다.
기방에서 진향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김영한은
백석시인을 만나게 되고 두사람은 서로 사람에 빠진다.
사랑하던 두사람은 1939년 백석이 만주로 가면서 이별을 한다.
이 후 해방이 되었으나 남북 분단으로 이 두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한다.
김영한은 해방후 대원각이라는 요정을 세웠고
이 대원각은 크게 번창하여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서울의 3대 요정으로 불리우게 된다.
김영한은 백석을 기리는 뜻에서 2억원을 출연하여 백석문인상을 만들기도 했다.
김영한은 법정스님의 무소유 정신에 감명받아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하게 되고
법정스님은 이 대원각에 길상사를 세운다.
길상사라는 사찰 이름은
김영한이 불교에 귀의할 때 법정스님이 붙여준 법명 길상화에서 따왔다.
북에 남았던 백석시인은 1996년에 사망하였고
길상화 김영한은 1999년에 사망 그의 유골은 길상사 안에 뿌려젔다.
김영한과 백석의 아픈 사랑 이야기를 떠 올리며 바라보는 꽃무릇은
아름답기 보다는 아픔이 전해오는 아련함이 느껴진다.
사랑했던 두 연인의 넋이 옛님을 찾아 온것은 아닐까?
길상사에 세워진 관음상
언뜻 보면 성당의 성모상을 닮은듯 하다.
이 관음상을 조각한 작가는 천주교 신자로 알려저 있다.
법정스님은 생전에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도 폭넓은 사귐을 가졌던 분이다.
천주교의 성당에서도 법정스님을 초청하여 강의를 듣기도 했었다.
그래서 이 관음상은 타 종교와의 화합 정신을 내포한 것으로도 보인다.
극락전
길상사에는 대웅전이 없고 극락전이 중심 법당이다.
대원각이라는 요정에 많은 화류계 여인들이 있었다.
한 많은 바닥 인생을 살다 간 화류계 여인들의 넋을 위로하고
극락왕생을 비는 뜻에서 대웅전 대신 극락전을 세운 것일까?
극락전 앞 축대에는 지금 해국이 한창 피고 있다.
법정스님이 기거했던 진영각 안에 스님의 영정사진이 모셔저있고
마당 한구석에 법정스님 유골을 모셨던 표지가 있고 이 곳에도 꽃무릇이 피었다.
김영한 길상화가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하여
길상사를 세운 뜻을 기리기위해
공덕비가 세워젔고 사당에는 그녀의 영정이 모셔저 있다.
길상사 꽃무릇 촬영을 간날
백석과 김영한의 아픈 사랑이야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많은 사람들이 길상사를 찾아와서 피어나는 꽃무릇을 감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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