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국가 최고의 사당이다.
왕실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기에 반드시 도읍지에 세워야 했고,
그 위치나 형식등도 따로 규정한 제도에 의거해 정해야 했다.
지금 서울의 종묘는 1395년 조선의 태조가
한양을 새 나라의 도읍으로 정한 후에 지었다.
궁궐의 왼쪽에 종묘를
오른쪽에 사직단을 두어야 한다는 주례에 따라
경복궁의 왼쪽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의 종묘는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1608년에 중건하였다.
건립 후 모시는 신주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수차례 건물 규모를 늘려 현재의 모습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현재 종묘제례는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거행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 56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 유네스코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등재되어 있다.
종묘의 정문
아무런 현판도 보이지않는다.
신로(神路)
종묘의 입구에서 부터 돌아서 나오는 곳 까지 이런 길로 연결되어 있다.
신로라하여 중앙이 높게 만들어저 있다.
조상의 혼령들이 다니는 길로 신성시 하여서
왕도 이길은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향대청
향대청은 제사 전날 왕이 종묘제례에 사용하기 위해 내린
향, 축문, 폐백과 같은 제사 예물을 보관하던 곳이다.
뒷 쪽에 고려 공민왕신당이 있다.
조선조 종묘에 고려조 공민왕의 신당이 있는게 좀 특이하다.
공민왕 신당의 설치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설만 있을뿐
확실한 기록이 없다고 한다.
재궁으로 들어가는 문
재궁
제사 전에 왕과 세자가 머물면서 제사 준비를 하는 곳
정면이 어재실이다.
임금이 제사를 올릴 준비를 하는 곳
어재실 우측이 세자재실
좌측이 어목욕청
진사청
제례용 음식을 마련하는 곳
종묘의 정전
왕과 왕비의 승하 후 궁궐에서 삼년상을 치른 다음에
그 신주를 옮겨와 모시는 건물로 종묘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다.
정전은 19칸으로 태조를 비롯한 왕과 왕비 49위가 모셔저 있다.
기둥과 기둥사이에 문이 있고
이 문을 열고 신실에 들어간다.
신실 안에 신주가 모셔저 있다.
정전의 정문은 보수공사 중이라 촬영하지 못했다.
영녕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정전의 신실이 부족하자
새롭게 별묘를 지어 추존왕(실제 왕은 아니지만 후에 왕으로 추존된 왕)과
제위기간이 짧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셨다.
중앙 네곳의 신실 지붕이 다른 신실보다 높다.
이 곳에는 태조 이성계의 4대 조상으로 조선 개국후에
왕으로 추존된 왕들의 신실이 있는 곳이다.
영녕전은 신실은 16칸으로 34위의 신주를 모셨다.
조선왕조의 왕 중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주는 종묘에 모셔지지 않았지만
왕위에서 쫓겨났다가 숙종 때 복위된 단종의 신주는 영녕정에 모셔저 있다.
평일 관람객의 숫자를 제한하기 때문에
종묘안은 매우조용하다.
악공청
제사 때 음악을 연주하는 악공들의 대기장소
지당(연못)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탄강의 주상절리 재인폭포 (0) | 2013.07.09 |
---|---|
조선궁중의 풍속을 볼 수있는 국립고궁박물관에 가다. (0) | 2013.07.04 |
북방한계선에 있는 강화 사기리탱자나무 (0) | 2013.07.02 |
태고의 신비가 숨쉬는 장전이끼계곡 (0) | 2013.07.01 |
아름다운 궁중자수전 (0) | 2013.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