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가을 화석정

시냇물48 2014. 11. 7. 10:21

 

"숲 속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으니 시인의 생각이 한이 없어라
 먼 물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서리 맞은 단풍은 햇빛 받아 붉구나
산은 외로운 달을 토해내고 강은 만리 바람을 머금는다.
 변방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가 저녁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소리"

(이율곡이 여덟살때 썼다는 시 八詩)

 

여덟살에 이런정도의 시를 썼다면 천재시인리아 할수 있을것 같다. 

오늘날 이런정도의 시인이 있다면 단연 노벨문학상감 아닐까?

 

요즘 화석정에 걸맞는 시인듯 하다.

본래 한시인데 한글로 번역하였다.

 

가을이 안녕을 고하는 지난  주말

파주 임진강변에 있는 화석정의 늦가을을 보러 갔다.

 

 

화석정은 원래 고려 말의 유학자인 길재가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에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었는데

사후 그를 추모하여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그 후 폐허가 되었다가 율곡 이이의 5대조인 강평공 이명신이

세종 25년(1443년)에 정자를 세우고 1478년 증조부 이의석이 중수하였다.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명명하였으며,

이이 때에 이르러 다시 중수된 유서깊은 곳이다.
( 자료:한국관광공사)

 

 

정자 주변에는 느티나무가 울창하고

그 아래 임진강에는 밤낮으로 배들이 오락가락 하였으며

밤에는 고기잡는 등불이 호화찬란 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임진강을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고 느티나무 몇 그루만이 그 시절을 증명해주고 있어 쓸쓸하다.

율곡 선생은 평소 정자에 제자들과 함께 기둥과 서까래 등에 들기름을 반질반질하게 먹여 두었다고 하는데,

훗날 임진왜란(선조 25년, 1592년)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파천할 당시(4월 29일 밤)

억수같은 빗속에서 강을 건널 때 이항복이 화석정에 불을 질러 무사히 배가 강을 건넜다고 전한다.

 

율곡선생은 국사의 여가가 날 때마다 이곳을 찾았고

 관직을 물러난 후에는 여생을 이 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보내면서 시와 학문을 논하였다고 한다.

당시 그의 학문에 반한 중국의 칙사 황홍헌이 찾아와 시를 읊고 자연을 즐겼다는 설도 있다

임진왜란때 불 타 없어져 80여년간 터만 남아있는 것을 현종 14년(1673)에

율곡선생의 증손 이후지, 이후방이 다시 세웠으나 한국전쟁때 다시 소실되었다.


 


현재의 화석정은 1966년 파주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복원한 것으로

건축양식은 팔작지붕 겹처마에 초익공() 형태로 조선시대 양식을 따랐다.

 건물의 정면 중앙에는 박정희 전대통령이 쓴 '' 현판이 걸려 있으며,

내부 뒷면에는 율곡선생이 8세때 화석정에서 지었다는 <>가 걸려있다.

임진강이 휘돌아 흐르는 언덕에 세워진 화석정의 전망은 아름답기 그지 없다.

 

 

 

 

 

 

 

 

율곡이 8세때 썼다는 시가 새겨저잇는 시비

머릿글은 이 한시를 번역하여 옮긴 시다.

 

 

 

 

 

 

 

 

 

 

 

 

화석정에서 내려다 보는 임진강 물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