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한국천주교 순교의 현장인 해미읍성

시냇물48 2015. 2. 17. 07:59

 

왜목마을에서 일출촬영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금강 하구둑으로 가는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가창오리 군무 촬영을 포기하고 돌아오려는데

으로 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서 우리를 태운차는 해미읍성으로 향했다.

가는 비가 내리는 겨울의 해미읍성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쓸쓸하기까지 했지만

가톨릭신자인 나에게는 관광이라기 보다는

 성지순례라는 생각으로 경건함이 느껴지는 출사길이었다.

 

 

고창읍성, 낙안읍성과 함께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읍성이다.

해미는 서해안 방어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조선 태종 14년에 왜구를 막기 위해 성을 쌓기 시작해 세종 3년(1421년)에 완성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높이 5m, 둘레 약 1.8㎞로, 동·남·서 세 방향에 문루가 있으며

원래는 두 개의 옹성과 동헌, 객사 두 동, 총안, 수상각 등이 있는 매우 큰 규모였으나

 현재는 동헌과 객사만 복원해 놓았다.

성벽 주위에 탱자나무를 심어 적병을 막는 데 이용했다고 전해지지만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네이버)

 

 

 

 

 

 

 

 

해미읍성 안에 옛 가옥들을 일부 복원해 놓았으나

그 규모는 다른 민속마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목가 작으며

안에 전시된 물건들도 크게 눈에 뜨이는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이 해미읍성의 순교지를 방문하셨다.

 

 

1866년 천주교 박해 때 관아가 있는 해미읍성으로

 1,000여 명의 천주교 신도들이 잡혀와 고문당하고 처형당했는데

고문당했던 회화나무에는 지금도 그 흔적으로 철사줄이 박혀 있고

태형으로 죽인 자리에는 자리개돌이 있어 천주교도들의 순례지가 되고 있다.

매년 서산 해미읍성 병영체험 축제가 열리는데

관아체험, 옥사체험, 군영체험 등 독특한 체험거리로 관광객에게 흥미를 준다.

 

 

2014, 8,16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시복하신 해미 순교자 3위 복자상

 

 

기념물로 지정된 해미읍성 회화나무

수령 300년 이상으로 추정되며 17960~1880년 사이 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철사줄로 머리채를 매달아 고문한 나무로 지금도 순교의 역사를 증언하는 듯 하다.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투옥되고 고문을 받았던 옥사

한국 천주교 순교사의 현장이다.

 

 

원래의 성곽 안쪽에는 탱자나무를 심었다고 전해 오는데

현재 살아있는 탱자 나무는 눈에 뜨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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