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안에서.

수리산 최경환성지

시냇물48 2012. 4. 10. 02:57

수리산 입구 병목안에서 계속 올라가다 보면

최경환성지라는 돌에 새겨진 표지판이 서 있다.

 

수리산 최경환성지는

기해박해 때 최경환 프란치스코, 부인 이성례 마리아,

그리고 또 다른 교우인 이 에메렌시아등 3명의 순교자를 낸 성지이다.

우리나라의 두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님의 부친인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과 순교자들의 신앙 발자취를 따라가며

순교자들의 신앙을 기리고 본받기 위하여

성인이 순교하기 직전까지 거주하며

신앙생활을 한 수리산 깊은 골짜기에 세워졌다.

 

이곳은 1837년 최경환 성인이 이사오기 전부터

조정의 탄압을 피해 숨어 살던 천주교신자들이 함께모여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옹기를 구워 팔거나 담배농사를 지으면서 살았기 때문에 담배촌이라 불렀다.

 

 

최경환 성인은 충청도 홍주군(현 충남 청양군 화성면 농암리) 다래골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려서 부터 천주교 신앙생활을 하여 왔다.

성인은 참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이것 저곳으로 옮기다가 마지막으로

과천 고을 수리산에 자리 잡게되었다.

아들 최양업이 신부가 되기 위하여 마카오로 떠난 것은 1836년이었으니

수리골로 온것은최양업신부님이 마카오로 떠난 다음해이다.

 

최경환 성인은 수리골에 거주하면서

 이곳으로 피해온 신자들의 공동체를 이끌었고 

조정의 천주교 탄압 속에서도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였다.

1839년7월 31일에 채포되어 옥중에서 갖은 고문을 당하며 배교를 강요받았으나

굳굳하게 신앙을 지키다가 1839년 9월 12일에 옥사하니 그의 나이 35세였다.

 

최경환 성인의 부인 이성례 마리아는 남편과 함께 잡혀서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같이 같여있던 젖먹이 아들이 굶어죽자

밖에있는 아이들이 걱정이되어

배교를 선언하고 석방되기도 하였으나

자신의 배교를 뉘우치고 재판관 앞에 나서서 배교를 취소하는 용기를 보였다.

이 마리아는 1940년 1월 31일 동료신자 6명과 함께 당고개에서 참수형을 받았다.

이 때 나이가 39세였다.

참수된 시신은 시구문 밖에 버려젔는데 그 시신을 찾지 못하였다.

 

 

 

최경환 성인이 살았던 집자리에 고택성당이 세워졌다.

성당 내부는 한옥 구조로 장식되었다.

 

 

최경환 성인 묘소로 오르는 계단

묘소로 가는 길가에 14처 묵상 기도의 길이 마련되어있다.

 

이 에메렌시아 순교자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최경환 가족및 교우들과 함께 채포되어 가던중 아들은 탈출 시키고 자신은 옥에 갇혔다.

옥중에서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모진 고문끝에 1839년 옥사하였다.

그의 나이 39세였으며 현재 명동성당 지하묘지에 안치되어 있다.

 

최경환 성인의 묘역

 

 

야외미사 장소

 

 

피정의 집(성례 마리아의 집)

 

옹기 항아리로 만들어진  묵주기도의 길

 

순교자 최경환은 교황 요한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 시성되었으며

이성례 마리아는 시복 추진중이나

이 에메렌시아는 사료부족으로 시복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료:수리산 성지 031-449-2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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