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시 염치면 백암리
이 곳에 있는 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의 유적지이자 영당이다.
현충사는 숙종조 32년에 세워젔고 숙종께서 친히 현충사라는 이름을 내렸다.
대원군의 서원 철패 시책에 따라 훼절되었고
일제의 강점기에 더욱 쇄락하였으나
1932년 동아일보를 주축으로 민족 성금을 모아 현충사를 재건하였다.
1966~1974년 현충사 경역을 확장하고
현충사 본전을 새로 지어 국민의 성지로 승격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충사는 사적 제155호로 관리되고 있다.
현충사에는 국보인 난중일기를 비롯아여 수많은 문화제가 보존되고 있다.
경역의 넓이는 16만 3096평 이다.
공의 묘소는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 아라산에 모셔저 있다.
충무공 영정
무과급제 교지
난중일기
이순신 장군은 전사한지 43년 후에 충무공의 시호가 추서되었다.
조선조 22대 임금 정조는 충무공에게 최고의 관직인 영의정을 추서하였다.
충무공의 사당은 서원 형식으로1706년(숙종32년)에 세웠는데
대원군 때 서원 철폐령으로 없어 졌다가
1932년 민족성금으로 다시 세워 졌는데
성역화 작업으로 새로운 본전이 건립되자 이 곳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현충사 정문인 충의문 앞에 세워진 홍살문
현충사 본전은 1932년 민족 성금으로 중건된 구 본전을 유물관 옆으로 이전하고
1967년 현충사 성역화 작업으로 새로이 건립하였다.
사당인 현충사의 주변에는 소나무와 대나무로 둘러 싸여있다.
소나무와 대나무는 충절을 뜻한다.
기념관의 영정과 동일하다.
사당에서 분향하는 참배객
정려: 정려는 충신, 효자 열녀등에게 임금이 편액을 내려
후대 사람들이 이를 기리도록 하였는데
이 정려안에 충무공울 비롯하여 다섯분의 편액이 걸려있다.
충무공이 공직에 나가기 전에 살았던 집
무과 급제로 공직에 나가전에 무술을 연마했던 활터
충무정: 장군의 가족들이 사용했던 우물
지금도 순례객들이 마신다.
많은 사람들이 현충사를 찾고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하루 소풍나온 기분으로 이곳을 다녀가지 않고
충무공의 충절을 기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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