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신미양요의 현장 광성보

시냇물48 2012. 6. 29. 11:00

강화에는 역사의 유적이 많다.

그 역사란 대부분 외세의 침입으로 엮어진 역사이다.

요즘 mbc에서 방영중인 주말드라마 무신에서

고려왕조가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로 도읍을 임시로 옮기고

끝까지 항전한다는 줄거리로 극이 전개되고 있다.

강화는 고려의 수도인 개성에서 가깝고 한양(서울)으로 들어오는 서해의 입구이며

한강과 연결되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어서 군사상 요충지이다.

 조선조 때 강화에서 벌어진 외국과의 전쟁은

프랑스군 침공인 병인양요와 미군의 침공인 신미양요인데 

비록 전투에서는 젔지만 끝까지 싸워 침공자들이 물러나게 함으로써

전쟁에는 이겼다는 후세의 평가를 받고 있다.

 

 

 

 

 

강화에는 5개의 진과  7개의 보가 있고 돈대가 53곳이있다.

진, 보, 돈대는 규모로 구분하는데

진은 지금의 대대 규모이고 보는 중대 규모, 돈대는 소대 규모인데

진, 보, 돈대는 규모의 차이이지 상하의 직속 관계는 아니라고 한다.

 

광성보 문루에서 용두돈대까지는 상당한 거리이다.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고 주위경관도 상당히 빼어난 곳이다.

역사공부를 하면서 아름다운 경관을 즐길수 있는 곳이다.

 

 

 

 

 

 

 

 

 

 

 

신미순의총

고종8년 (1871)  신미양요때 광성보 전투에서 53명의 수비군이 전사하였다.

이중에서 대장인 어재연 장군과 장군의 동생 어재선은 고향에 장사 지냈고

나머지 51명은 신원파악이 어려워 일곱개의 묘소에 합장을 하였다.

 

 

 

 

 

손돌목 돈대

 

 손돌목 돈대와 용두돈대의 중간 해안에 포대가 있다.

 

용두돈대의 위치는 김포쪽으로 돌출되어 있고 주위 경관이 빼어나다.

바닷물은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거칠게 소용돌이치고 있다

 

 

 

 

 

전시된 구식 대포

이 대포로 현대식 대포로 무장한 프랑스나 미국의 해군과 전투를 벌였다.

 

                  용두돈대의 위치는 김포 쪽으로 크게 돌출되어 있다.

용두돈대의 앞 바다는 물길이 매우 거세어서  뱃사공들도 건너기를 꺼려하는 곳이었다.

1627년 고려조때 후금군이 고려를 침공하자 왕은 강화도로 피신하게 되었는데

 뱃사공은 물이 소용돌이치는 곳으로 배를 몰자 왕은 자기를 죽이려 한다고 생각하고 뱃사공을 죽였다.

강화에 도착한 왕은 그 뱃사공이 바른 바닷길로 배를 몰았음을 알게되었고

그 시신을 잘 묻어주고 그 뱃길을 사공 손돌의 이름을 따서 손돌목이라 지었다 한다.

손돌이 죽은 음력 10월 20일에는 큰 바람이 부는데

이 바람을 손돌바람이라 부른다 한다.

손돌의 무덤은 건너편 김포에 있다.

 

 

 

 

 

광성돈대

 

녹음이 우거진 산책로를 다라 걸으며

외세의 침입에 어떻게 대항하고 이 땅을 지켰는지를 되돌아 보는 역사의 현장

공부하는 아이들과 함께 찾이봄직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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