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왕실사람들
임금이나 왕족들이 나들이를 할 때 뭘 타고 다녔을까?
조선조 왕실에서 사용하던 가마들을 한 곳에서 볼수 있다.
고궁박물관 전시실에
임금이나 왕족들이 사용하던 가마들이 전시되고 있다.
가마의 종류도 다양하다.
임금이 타던 16인교인 연을 비롯하여
사인교, 육인교, 팔인교,
말이 끌던 가마도 있다.
중국이나 서양에는 마차가 주류를 이루고 있을 때
사람들이 매고다니는 가마 문화가 이땅에 자리잡고 있었다.
임금의 가마
연 :輦
조선시대 국왕이 행차 시에 탔던 가마이다.
지붕이 있는 형태의 가마라하여 유옥교라고 표기했다.
난간부분에 기린등 상상의 동물을 그렸고
몸체 상단의 네 면에는 주렴을 드리운 검은 휘장을 달아서
차양처럼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하였다.
가마채의 길이는 총6m가랑으로 앞 뒤로 8명씩
총 16명이 어깨에 메고 이동하였다.
앞 쪽이 남여
남여는 등걸이와 팔걸이가 있는 의자를 가마채에 부착하여 만든 것이다.
고위 관료나 늙은 재상이 탔고 간편항 행차 때 국왕도탔다.
뒷 쪽이 초헌
사람이 끄는 외바퀴의 높은 탈 것이다.
세종 때 만들어진 조선 고유의 것이다.
2품이상의 고관이 탔으나 자리가 높이 올라가
권위의 상징이라 여기고 왕자와 부마도 탔다.
말이 끄는 가마
駕轎(가교)
가교는 가마채를 말의 안장에 연결하여
두 마리의 말이 앞 뒤에서 끌고 가는 가마이다.
임금이나 왕실 어른의 장거리 행차 때 이용하였으며
정조가 화성행차 시에 사옹했던 정가교가 이것과 같은 형태였다.
청계천 벽화 화성행궁도에서
말이 가말릏 메고가는 모습이 그려저 있다.
사인교(四人轎)
집 모양의 몸체에 가마채를 달아 네 명의 가마꾼이 멜 수 있게 한 가마이다.
가마꾼의 수에 따라 사인교, 육인교. 팔인교가 있다.
왕실에서만 사용되는 주칠을 하였으며
지붕의 사면에는 술을 달고 불로초,박쥐문 등의 길상문으로 장식하였다.
전시된 사인교에는 가마채가 보이지 않는다.
봉황가마(鳳橋)
봉황 문양으로 전체를 화려하게 장식한 가마이다.
지붕및 출입문을 비롯한 가마의 네 측면을 봉황으로 장식하였고
길이를 짧게한 붉은 색의 휘장에도 봉황을 금박하였다.
가마채는 별도의 고리를 만들어 고정하여 메도록 하였으며
끝 부분은 봉황 머리로 장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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