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파주 자운서원에서 율곡을 만나다.

시냇물48 2016. 6. 21. 10:00

 

율곡 이이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여기에 짧은 지식으로 이의를 설명하면 자칫 오류를 범할 우려가 없지않아

이는 생략하고 전시관에 게시된 자료로 대신한다.

 

율곡은 외가인 강릉의 오죽헌에서 출생하였고

자라고 공부한 곳은 본가인 파주에서다.

 

파주에는 율곡과 관련된 곳이 두 곳 있다.

 

율곡의 묘소가 있는 자운산 기슭에 율곡의 사상과 덕행을 기리는 자운서원이 있고

자운서원에서 멀지 않은 임진강 가에 화석정이 있다. 

 

자운서원에 가면 율곡과 모친인 사임당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되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자운서원으로 알려진 곳
공식 명칭은 율곡선생 유적지이고 자운서원은 이 유적지 안에 자리잡고 있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맨 먼저 만나는 것이

율곡과 사임당의 동상이다.

 

 

율곡기념관에 들어가면 이이 율곡의 생애와 그 기족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사임당의 초충도 병풍

병풍 열폭에 식물과 나비등을 그렸다.

 

 

율곡의 모친 신사임당에 이어 딸 매창은 어머니 못지않게 시와 그림에 능하였던 것으로 전헤온다.

사임당의 딸 매창은 시에 능했던 부안기생 매창과는 다른 인물이다.

율곡의 막내동생 옥산 이우도 시와 그림에 능했던 인물이다.

 

 

 

율곡전서 전 5권

 

 

간찰

이이가 황주기생 유지에게 보낸 편지

어떤 내용일지 자못 궁금하다.

 

 

율곡의 10만 양병론

이 글에서 율곡은 10만 병사를 길러야 하는 이유와

병사를 양성하는 방법과 병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당파싸움에 빠저 있던 조정에서는 이 대책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율곡의 초상화

 

 

율곡의 초서 병풍

 

 

신사임당의 자수병풍

 

 

지방 유림으로 보이는데 제실로 들어간다.

 

 

율곡기념관과 자운서원 사이에 넓은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다.

현장학습 나온 초등학생들

 

 

연못 안에는 수련이 한창 피고 있다.

 

 

율곡과 부모 형제들의 묘소로 들어가는 문

 

 

 

앞의 묘소는 율곡의 부친 이원수와 모친(신사임당)의 합장묘

그 윗쪽 중간이 율곡의 형의 부부

맨 위가 율곡 부부의 묘소다.

후손이 어른의 윗쪽에 묘를 쓰지 않는것이 우리의 전통인데

이 곳에 와 보면 아들들이 부친의 윗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아들이 부친보다 높은 벼슬을 하면 윗쪽에 묘소를 쓰기도 했다는 설도 있다.

 

 

율곡 부부의 쌍분 묘소

부부의 묘소가 양 옆으로 배치되지 않고

율곡의 부인 곽산 노씨의 묘소가 율곡 묘소 윗쪽에 자리잡고 있다.

 

 

자운서원

자운서원은 율곡 사후에 지어진 곳으로 그의 본가가 있었던 지역에 지어진 서원이다.

효종 때 ‘자운’이라는 사액을 받아 조선 내내 이 지역 교육을 담당했으나

고종 때 대원군에 의해 서원철폐령이 내려지며 문을 닫게 된다. 

 

1970년대 정화사업에 의하여 다시 지어져 지금은 깔끔한 분위기의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자운서원의 정문인 자운문

 

 

자운서원의 역사를 지켜본 노거수

 

 

유생들의 강학장소인 강인당

지금의 학교 교실과 같다.

 

 

비문은 송시열이 지었고

글씨는 숙종 때 명필 김수증이 썼다는 자운서원 묘정비

율곡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젔다.

 

 

강인당과 문성사 사이에 또 하나의 솟을 삼문이 있다.

 

 

문성사

율곡의 초상과 위패가 모셔저 있다.

 

 

 

 

율곡 이이의 신도비

율곡의 덕헹을 기리는 비석으로 글은 이항복이 지었고 신익성이 글씨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