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보리고개를 아십니까? (강화 청보리밭)

시냇물48 2018. 6. 9. 12:00


1960년대 초반 이전 4,5,6월의 신문을 보면 춘궁기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요즘은 봄철이 꽃피고 나들이에 좋은 시기로 즐겁고 행복한 계절이지만

그 때에는 먹을거리가 없어서 배고픈 계절이었다.


이때를  보리고개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가을 농사로 거둔 쌀은 떨어젔는데

햇곡인 보리가 나올려면 한창을 기달려야 하는 시기가 있었다.

이 시기를 보리고개라 했는데

이 보리고개에 식량이 없어서 들판에 있는 풀을 배어다 나물로 먹었고

산에가서 소나무 껍질(생키)을 벗겨다가 삶아서 먹었다.

부황이 난 사람들의 얼굴은 누렇게 떠 있었고 퉁퉁 부은 사람도 많았다.

아이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먹다보니 배탈이 자주나서

수업시간에 바짓가랭이를 붙잡고 화장실로 덜려가곤 했다.

보리고개에 굶어서 죽는 사람도 적지않았다.


이런 현상은 1960년대 초반까지 계속되었다.



보리가 채 영글기도 전에 보리를 꺽어다가 쩌서 말리면

덜 여문 알갱이지만 비상식량을 마련할수 있었다.

 이 알갱이를 맷돌에 갈아서 죽을 쒀 먹었다.

이 알곡을 청맥이라 했는데 청맥의 양은 정상 수확의 몇분의 일도 안되어

농민에게는 큰 손해지만 굶고있는 식구들이 살아갈 수 있는유일한 방법이었다.


이 시기에 동내 사내애들은 남의 밭에 들어가 보리를 꺾어다 불에 구워 먹었다.

속칭 보리서리였다.


요즘은 보리밥이 건강식이지만

보리고개를 겪은 사람들은 보리밥 이야기만 들어도

배고픔으로 아팠던 시절이 떠올라 고개를 젓는 사람들이 많다.



강화 군청에서 조성한 청보리밭

처름 찾았을 때는 보리밭에 사잇길을 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일주일후 강화쉼터에 가는 길에 좀 돌아가지만

어떻게 만들어 놨는지 궁금하여 다시 찾아갔다.

보리밭 사이 사이로 산책길을 만들고 바람개비들을 많이 세웠다.

보리밭 가운데에 낮지만 전망대를 만들었고

더위를 피해 쉴수있는 원형 천막도 두군데나 만들어 놨다.

나름 많은 신경을 많이 쓴듯하다.


좀 아쉬운점은

처음 왔을 때는 진한 초록색이었는데

보리가 한창 익고 있는 시기라

일주일 사이에 누렁보리로 신선한 맛이 많이 떨어진 점이다.


내년에도 보리를 심는다면 올해보다는 10일 전쯤에 개방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싶다.

그리고 전체는 아니더라도

한 귀퉁이에 붉은 양귀비를 섞어서 심으면 시각적인 효과가 더 클 것 같다.



임시로 만든 철제 전망대










초지대교를 건너 강화에 들어서면사 바로 만나는 청보리밭

도시 생활에 찌든 사람들에게

상큼한 전원의 정서를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려는

강화군청의 발상이 돋보이는 현장이다.

내년에는 좀더 좋은 모습을 기대하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