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령포는 분명 육지인데도 섬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삼면을 서강이 휘감아 돌고 한 방향
뒤로 뻗은 산 줄기는 매우 험하여 보인다.
지금도 이 곳 청령포에 들어가려면 배를 이용한다.
조선조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
그 때는 서강이 지금보다 더 넓고 깊었으며
산줄기엔 나무 덩굴이 우거져 접근이 어려웠기 때문에
청령포는 섬아닌 섬이었었다.
청령포를 찾는 사람들은 배를 이용하여 서강을 건너야 한다.
단종 어소(댠종이 묵었던 처소) 주위의 소나무들은
어소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소나무가 기울어진 이유를 규명하지 못하였으나
영월 사람들은 유배온 단종을 향하여 예를 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어소는 단종 사후에 다시 지어젔고
소나무들도 단종 사후 많은 세월이 흐른후에 심어진 것 들이다.
어소 앞 마당에 돌이 놓여 있는데
이 위치에 본래의 어소가 있었고
그 안의 비각안에 단묘재본부시유지비라는 비석이 있다.
어소 내부
궁녀들의 처소
원래 유배지에 시중드는 사람들이 따라올 수가 없는데
이 궁녀들은 몰래 따라왔다고 한다.
단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시중들던 궁녀들인데
나이들이 많아서 단종이 이 궁녀들에게서
아이를 가질수 없다고 판단하여
묵인하였다고 한다.
단종이 사사된 후 이 궁녀들은 모두
영월 강물에 투신하여 생을 마쳤다고 한다.
관음송
수령이 600여년 넘는것으로 추정되며
단종이 유배 때 이 소나무의 갈라진 곳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전설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되어있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보았으며(觀)
때론 오열하는 소리(音)가 났다하여 관음송이라 부른다
망향탑
단종이 유배생활 때 한양과 해어진 왕비를 그리면서
쌓았다고 전해져 온다.
노산대
단종이 유배생활 중에 석양의 하늘을 보면서 한양을 그리워 하던 곳
노산대에서 바라본 영월 서강
금표비
단묘재본부시유지비 북쪽에 세워저 있다.
내용을 번역하면
"동서로 300척 남북으로 490척과
이후에 진흙이 쌓여 생기는 곳도 또한 금지하는데 해당된다."
라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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