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에 자리잡은
서오릉(사적 198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조선왕릉
서오릉 안에는 경릉, 창릉, 명릉, 익릉, 홍릉등 다섯군데의 릉과
릉보다 아랫 단계인 순창원과 수경원이 있다.
그리고 서오릉 한 귀퉁이에 징희빈의 묘인 대빈묘가 있다.
서울 은평구와 인접해 있고 접근성도 좋을 뿐 아니라
경내가 넓고 나무들이 울창하여 봄에서부터 가을까지
많은 소풍객들이 찾아와서 쉬어가는 휴식처가 되고 있다.
명릉(사적 198호)
숙종과 계비인 인현왕후와 인원왕후의 릉이있다
정자각 뒤로 숙종과 인현왕후의 쌍분이 보이고 왼쪽으로 인원왕후의 릉이 있다.
모든 릉 앞에는 홍살문이 세워저 있다.
대부분의 릉은 홀살문과 장자각이 일직선으로 배치 되어있다.
조선조 19대 숙종은 원비인 인경왕후가 있고
계비로 인현왕후 제2계비로 인원왕후가 있었다.
그리고 희빈 장씨가 있다.
숙종의 여인들은 모두 서오릉 안에 있다.
명릉 안에 숙종과 계비인 인현왕후가 모셔저 있고
조금 떨어진 옆에 제2 계비인 인원왕후의 묘가 있다.
원비인 인경왕후의 릉은 익릉이라 부르며
서쪽으로 조금 거리를 두고 자리 잡고 있다.
익릉을 보면 주변 경치도 수려하고 릉의 규모도 역대왕의 릉에 비해 손색이 없다.
익릉은 별도로 포스팅 할까 한다.
또 한사람의 숙종의 여인 장희빈 묘 또한 서오릉 안에 있는데 구석진 자리다.
당쟁에 휘말린 숙종의 여인사
당쟁속에서 폐위와 복위가 이루어지고 왕의 여인이 사사되는 비극의 주인공인 숙종의 릉과
숙종을 따르던 여인들의 혼이 잠든 서오릉
그 혼들은 지금 서오릉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다.
홍살문애서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명릉의 참도는 다른 릉에 비해 특이하다
왼쪽과 오른쪽을 변로라 하며 신하들이 다니는 길
왼쪽 두번째 높고 넓은 길은 신도라하여 릉의 주인인 영혼(신)이 다니고
신도와 변로사이에 있는 길을 어도라 하여 임금이 다닌 길이다.
서오릉의 다른 릉은 삼도 또는 이도로 신도(영혼이 다니는 길)와 임금과 신하가 다니는 길로 되어있다.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의 릉
제2계비인 인원왕후의 릉
서오능의 정자각들
제전(祭殿) ·왕릉(王陵) ·원(園) 등의 바로 앞에 짓는 ‘丁’자형 침전(寢殿)
제의식이 이루어지는 건물로
우리나라에서는 왕릉건축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것이며
중국의 묘사(廟寺)건축과 일본의 신사(神社)와 유사하다.
서오릉의 다른 곳은 묘비각이 한칸인데 비해
명릉은 능이 두군데라선시 묘비각이 두칸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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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198호 대빈묘
조선 제19대 숙종의 후궁인 희빈 장씨(?~1701)의 묘이다.
숙종은 오랫동안 아들이 없다가 궁녀 장소의에게서 숙종 14년(1688)에 왕자 균(경종)을 얻었다.
이듬해 균을 세자로 책봉하면서 장소의를 희빈으로 봉하였다.
그후 왕비 인현왕후 민씨를 폐비하고 장희빈을 왕비로 책봉하였으나,
이를 후회하고 숙종 27년(1701)에 인현왕후를 복위하고 장희빈은 사사되었다.
대빈묘는 원래 광주군 오포면 문형리에 있었는데 1970년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이곳은 서오능에서 가장 후미진 곳이며
묘의 석물도 양반 대갓집의 묘소보다도 초라하다는 평이다.
오래전 TV에서 장희빈이라는 사극이 방영 될 때
누군가가 이 대빈묘의 봉분을 훼손한 사건도 있었다.
전해오는 이야기나 사극이 얼마나 사실인지는 모르나
왜곡된 삶을 산 장희빈은 죽어서도 수난을 당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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