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철죽꽃에 둘러싸인 모양성의 성곽

시냇물48 2015. 5. 3. 11:00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126

고창읍성으로 불리우는 모양성은 1965년 4월 1일 사적 제145호로 지정되었다.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석성으로 고창의 방장산을 둘러싸고 있다.

둘레 1,684m, 높이 4~6m, 면적 16만 5,858㎡이며,

동·서·북의 3문과 치() 6곳, 옹성(), 수구문() 2곳 등이 남아 있다.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으로 쌓은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고,

읍성으로서는 거의 완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이 지역에서는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성밟기놀이가 전해오는데,

 여인들이 손바닥만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돈 다음 성 입구에 그 돌을 쌓아둔다.

이렇게 쌓인 돌은 유사시에 좋은 무기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성내에는 1871년에 세운 대원군 척화비가 서 있고 

읍성 앞에는 조선 후기 판소리의 대가인 신재효의 생가가 있다.(네이버)

 

 

 

 

 

 

▶ 답성(성밟기)놀이
성을 밟으면 병이 없어 오래살고 저승길엔 극락문에 당도한다는

전설 때문에 매년 답성놀이 행사가 계속되고 있으며,

성밟기는 저승문이 열리는 윤달에 해야 효험이 많다고 하며

같은 윤달이라도 3월 윤달이 제일 좋다고 한다.

또한 엿새날이 저승문이 열리는 날이라고 하여 초엿새, 열엿새, 스무엿새날에 답성 대열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리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극락승천 한다."고 한다.

성을 돌 때는 반드시 손바닥만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돌아 성 입구에 다시 그 돌을 쌓아 두도록 되어 있다.

고창읍성이 아낙네들의 힘만으로 축조되었다는

전설적 사연으로 답성도 부녀자들 만의 전유민속이 되었지만

 흙 한줌, 돌 한 개도 모두가 부녀자들의 손과 머리로 운반,

구축되었던 당시의 대역사를 되새겨 보는 뜻으로 돌을 머리에 이고 도는 풍습이 남아있다.

또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도는 관습은

여인네들의 체중을 가중시켜 성을 더욱 단단히 다지게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깊은 뜻은 이 성곽의 축성 배경이 왜침을 막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유사시의 석전에 대비하는 유비무환의 예지로서

머리에 인 돌을 성안에 쌓아 두고갔다는 전설도

모두가 호국의 예지를 빛내 주는 이야기들이다.

고창군에서는 답성민속을 기리기 위해 음력 9월 9일인 중양절을

군민의 날로 정하고「모양성제」와 함께 답성놀이를 재현하고 있다.(네이버)

 

 

 

 

읍성으로 들어가는 성문

 

 

성곽에 오르는 길은 성문을 들어서면 성문 양쪽으로 나있다.

성곽 중간에 성밖으로 나가는 문은 모두 닫혀 있어서

모양성을 제대로 볼려면 성위를 한바퀴 돌고

다시 성 밖으로 나가서 성 아래를 한바퀴 돌아야 한다.

 

 

읍성 안에는 산책길이 잘 닦여저 있다.

 

 

 

 

 

 

 

 

 

 

 

 

지금 모양성은 붉은 영산홍으로 둘려싸여 있다.

일년중 경치가 기장 아름다운 시기다. 

 

 

 

 

이 성곽 부분은 꽃이 심어저 있지 않다.

 

 

 

 

 

 

 

 

 

 

 

 

 

 

 성곽 밖 가까운  곳에 명창 신재효 생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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