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의 명승지로 알려진 연미정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서 한쪽은 서해로
또 한쪽은 염하강(강화와 김포사이의 바다)으로
나누어지는 곳에 세워젔다.
그 형상이 재비꼬리를 닮았다하여
연미정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현재 연미정을 둘러싼 월곳돈대의 바다쪽 방호벽 넘어는
비무장지대로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
강화외성의 문루인 朝海樓앞 도로에서
몇십미터만 가면 민간인 출입 통제구역이다.
지금도 연미정은 출입시간과 사진 촬영장소가 제한되어 있다.
연미정은 월곳 돈대안에 자리잡고 있으며
월곳 돈대는 강화 외성 문루인 조해루와 맞닿아 있다.
조선조 인조 정묘호란 때에 왕이 강화로 피난하였고
청과 강화조약을 체결한 곳이 이 곳 연미정이다.
조해루는 강화로 들고 나는 사람들을 검문하였던 곳이다.
이곳은 물길이 거세지않고 개성쪽과 가까워
육지와의 왕래가 잦았던 곳이라
검문소를 세워 섬의 출입자에 대한 관리를 했던 곳이다.
월곳 돈대의 외형은 원형으로 강화의 다른 돈대와 비슷하다.
돈대안에서 바다쪽으로 전망이 툭 터져있고
바다건너 북한 땅이 손에 잡힐듯하며
노거수 아래의 연미정은
신선들이 유유자적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한다.
연미정은 고려조 고종때 나라에서 건립하였고
이곳에서 학문을 논하고 후학들을 가르쳤다.
조선조 중종 때 삼포왜란 진압에 공이 큰 황형에게 하사되었고
지금도 황형 후손들의 소유라고 한다.
월곳돈대의 축성연대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고려가 몽고와 화친하면서 강화의 방어시설을 철거하였고
돈대는 대부분 조선조에서 군사시설로 축조하였기에
연미정의 위치가 전략적으로 요충지라 이 곳에 돈대를 세워
군사시설안에 정자가 있는 모습을 보게 한다.
즉 연미정이 먼저 세워졌고
후에 연미정 주위에 돈대가 세웠다고 본다.
연미정은 안천광역시 유형문화제 제 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좁은 바다건너 북한땅이 손에 잡힐듯 가까웁다.
이 쪽 동내에서 큰 소리로 북쪽 사람을 부르면 답할듯 하다.
1996년 폭우 때 떠내려온 항소가 상륙했던 유도.
이 유도는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우리의 섬으로
군이 1997년 초에 황소 구출작전을 벌려 구해왔고
이 황소는 10여년을 더 살다가 2005년 죽었다고 한다.
우측 상단이 유도
건너편이 북녁땅이다.
이 바다 가운데로 군사분계선이 그어저 있는데
강물은 거침없이 오늘도 흐르고 있다.
해병대의 구출작전으로 육지로 옮겨지는 유도 황소(해병대 홍보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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